썩은 된장
2010. 3. 7일
<새벽 1시에 받은 계시>
요건 청주에 있는 조카가 보내준 된장이고, 그리고 요건 그저께 원장님이 장독에서 푹 퍼 담아 준 것이다. 요것도 보물, 요것도 보물, 둘 다 보물이다. 둘 다 집에서 직접 메주를 써서 담근 된장이기 때문이다. 이쪽 병에 있는 것도 2L짜리 유리병으로 삼분지 이는 됨직 하게 가득 담겨 있고, 그리고 이쪽 병에도 똑 같은 2L짜리 유리병에 삼분지 이는 되게 가득 담겨있다. 색깔도 아주 그만이다. 나란히 놓여있는 된장이, 이쪽 것이나 저쪽 것이나 둘 다 아직도 노란메주색깔이 그대로 유지되어있다. 더군다나 유리병에다 담아놓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것이라서, 싱싱하기가 그만이다.
“지금 막 장독에서 꺼내온 것이라니까, 와, 기분 째진다. 이것으로 찌개를 끓여도 띵 호아, 이쪽 것으로 찌개를 끓여도 띵 호아, 내가 이렇게 맛있는 된장으로 찌개를 끓여먹는 호강을 할 때가 다 있다니!,”
십분 쯤 더 기도를 했을 때다.
이번에는 바가지에 담겨있는 된장에서, 한 스푼 푹 퍼서 찌개냄비에 털어 넣는다. 북한 된장이다. 북한 땅 한 복판에서 가져온 것이다. 북한으로부터 된장 한 바가지 쓱 내려오는데, 보니 아주 큼직한 바가지에 된장이 하나 가득 담겨있다.
그런데, 된장이 좀, 상했다. 된장을 뚜껑도 없는 바가지에다 담아놓다니!, 이렇게 뚜껑도 없이 한 바가지 가득 담아놓았으니, 그동안 이걸 어디다 보관하고 있었을까!, 윽!, 혹시 파리가 벌레라도 까놓았으면 어떻할려고!, 무엇보다 물기가 꼬독꼬독하게 말라버린 것이, 아무래도 좀 상했다. 색깔이 벌써 시꺼멓게 썩었다. 검으틱틱하다.
“아닌데, 상하기는, 된장인데 상하기는, 된장이 이만하면 됐지 무어가 상했는가!,”
“그래도 좀, 좀 색깔이 검으틱틱한 것이, 완전히 물기가 바짝 말라버렸는걸!,”
“그래도 된장인데 상하다니!,”
“아니 꼭 상했다기보다, 된장의 색깔이 검으틱틱한 것이 잔뜩 찌들어버리지 않았는가!,” 된장을 장독에서 퍼 담아가지고 밖에다 너무 오래 두어서 그렇다. 아무래도 좀 썩었다. 쿠리한 냄새가 나기도 하고, 찐덕찐덕 하기도 한 것이 맛이 아주 확 갔다. 또 벌래가 들어있을 것 같기도 하고!,
“윽! 비위가 상한다. 왜 다 썩은 된장을 찌개냄비에 퍼 넣을까!,”
“안 썩었대도, 아니 된장이 그만하면 됐지, 또 된장이 좀 상했으면 어떤가, 찌개 끓여먹는 것인데, 왜 갑자기 그렇게 부자 냄새를 피우는가,”
“아니라니까, 좀 상했다니까, 냄새가, 냄새가 쾌쾌하고 찐덕찐덕 한 것이, 좀 상했다니까, 색깔도 그렇고, 윽! 바가지 체 내버렸으면 좋겠는데, 왜 다 썩은 된장으로 찌개를 끓일까, 여기에 이렇게 씽씽하고 맛깔 나는 된장이 두 병씩이나 있는데,”
기어코
찌개냄비에 미역 씻은 것을 한 그릇 건져서 푹 집어넣는다. 됐다. 그만하면, 미역은 그만하면 적당하게 씻어 담겨졌고,
보니
물도 한 그릇 찰랑찰랑하게 떠다 놓았다. 수돗가에서 지금 막 생기가도는 물을 한 그릇 찰랑찰랑하게 떠다놓았다.
됐다. 미역도 잘 씻어 담겨졌고, 물도 떠왔고, 그런데, 다만, 다만, 윽!, 이 된장, 이 북한에서 내려온 된장, 윽! 바가지에 하나 가득 담겨있는 다 썩은 된장, 이것을 냄비에다 한 스푼이나 푹 퍼 담았으니, 이 찐덕찐덕 하게 썩어가는 된장을 한 스푼이나 푹 퍼 담았으니, 윽!, 이걸 먹을 수도 없고, 버리기도 그렇고,
와, 오늘 찌개는 콱 잡쳤다. 쯧쯧!, 다 썩은 된장찌개라!, 냄새가 쾌쾌하게 나는 썩은 된장찌개라!, 찐덕찐덕 하게 썩어가는 된장찌개라!, 쯧 쯧!, 아니, 싱싱한 된장이 두병씩이나 나란히 놓여있는데, 그래 하필이면 북한에서 내려온 다 썩은 된장으로!,
무슨 뜻일까?,
싱싱한 된장이 두병씩이나 나란히 있는 것을 보면, 남쪽에게나 북쪽에게나 둘 다 유익이 되는 아주 좋은 일이 잘 진행되고 있었었다. 그런데, 쓸데없이 북한이 다 썩은 된장을 푹 퍼 담으면서 일을 저질러 놓고 만다. 왜 북한은 다 된밥에다 초를 치고 그러는가,
하여튼 북한이 다 썩은 사건을 툭 터트려 놓고 있다. 요즘처럼 남북한 전쟁이 초를 다투고 있는 판에, 이 다 썩은 사건이 어떤 촉매역할을 할 것인지 보통으로 신경이 써지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