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눈내릴 때(5)
2010. 1. 9일
<오후 7시에 받은 계시>
“앗 춥다. 앗!, 몸이 얼어들어온다. 목을 있는 대로 들여 밀고는 몸을 오싹하고 움츠려 보지만, 싼득싼득 얼어들어오는 눈바람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있다. 삼거리 좌우편에 인삼밭이며 고구마 밭 할 것 없이, 눈이 너무나 많이 쌓여있다. 뒤편 산길 쪽으로 쌓인 눈 위에, 누군가의 발자국이 꽝꽝 얼어붙은 체, 좀처럼 녹을 줄을 모르는 것을 보면, 요즘 날씨가 춥기는 되게 추운 모양이다. 사방 들판마다 이렇게 발목이 잠길 정도로 눈이 푹푹 쌓여 있으니, 이 많은 눈이 언제 다 녹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쌓인 눈이 녹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얼음처럼 더욱더 꽝꽝 얼어붙는 기분이다.
“예수님,
왜 요즘은 이렇게 자꾸만, 흰눈이 쌓인 들판만 계속 보여 주십니까, 혹시 흰눈이 내릴 때 남북한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을, 재 확인시켜주시기 위한 것은 아닙니까?”
한 십분 정도 기도를 한 것 같다. 이번에는 시골 들판에서 농부아저씨가 국수를 먹는 장면이 보인다. 30대 젊은 농부아저씨가, 논둑에 앉아서 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다.
도로가에 붙어있는 논둑 겸 신작로 뚝방이다. 뚝방 언덕에 앉아서 30대 젊은 농부아저씨가, 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다. 국수를 그렇게 맛있게 먹고 있는 표정으로 보아, 아마도 새참은 아닌 것 같다.
맛있게 먹는다. 질그릇으로 된 큼직한 국수그릇을 들고, 뱃속에서 당겨오는 국수 맛에 정신이 쏙 빠져있다.
국수 그릇이 일반 대접이 아니고 뚝배기다. 된장찌개를 끓이거나 설렁탕 또는 곰탕을 담아내는데 사용하는, 질그릇으로 된 커다란 뚝배기다. 보통 밥공기로는 3~4공기 정도는 들어갈 듯싶은 좀 큰 그릇이다. 시꺼멓게 생긴 곰탕 그릇에 국수가 한 그릇 가득 담겨있다.
그런데 왠지 국물이 좀 너무 많은 것 같다. 국수 건더기에 비해서 국물이 너무 많다. 사실 이정도의 양이라면 뭐 보통 사발이나 대접에 담는 대도, 한 대접이 채 될까 말까한 양이다. 그런데 일부러 큰 뚝배기에 담아 가지고 물을 좀 많이 잡은 것 같다.
아마도 요즘 같은 전쟁 통에, 양식이 모자라다보니, 국물이라도 많이 마셔가지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일부러 큰 그릇에다 국물을 많이 잡은 것 같다.
30대의 새파란 농부아저씨가 시꺼먼 뚝방 언덕에 털썩 주저앉아서, 점심을 맛있게 먹는다.
무슨 보물단지라도 끌어안듯, 국수그릇을 왼손으로 꼭 감싸 잡고는, 일단 젓가락으로 국수 한두 가닥을 먼저 건져 먹어본다. 국수 가닥에 국물이 조금 딸려 올라간 것 같다. 맛이 기가 막히다. 맛이 그만이다. 세상에 없는 맛이다. 멸치에서 울어난 국물이 위장을 있는 대로 동하게 만든다. 국수 가닥을 잡아 물자마자 시큼한 침이 한 입 감도는 것이, 다음 젓가락이 올라올 때까지 참아 주지를 못한다.
갑자기 입안에 시큼한 침이 한입 가득 돌자, 뱃속까지 동해오는 미각을 참지 못한 농부아저씨가, 온 몸을 한번 크게 오싹 하고 휘두른다.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몸을 크게 한번 움츠린 후에, 부랴부랴 다시 국수그릇을 급히 끓어않는다.
허기증을 느낀 농부아저씨가, 한 두 가닥을 허둥지둥 퍼 먹는가 하더니, 위장 속 깊은 데서부터 재촉해오는 입맛을 참지 못하고, 그만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두 손으로 국수 대접을 움켜잡는다. 그리고는 뚝배기 체 벌컥 벌컥 들여 마시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앗불싸,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다. 입안에서 당겨오는 미각을 참지 못하고 그만, 한꺼번에 너무 많이 마셔버린 것 같다.
“쯧쯧, 이렇게 기가 막히게 맛있는 국수를,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우다니!,”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운 뒤에, 위장에서 또 들어오라, 들어오라 하면 큰일이다. 이럴 때 아껴먹어야 된다. 될 수 있는 대로 음식의 냄새를 만끽하면서, 조금씩 아껴 먹어야 오랫동안 먹을 수가 있다.
위장 깊은 곳 뿐 아니라, 심지어 뱃속 깊이 자리 잡은 창자까지 동해오는 음식의 미각을 억제해가면서, 최대한으로 조금씩 아껴가면서 마신다. 한번에 한 모금씩만 조금씩 국물을 들이마신다. 앗불싸, 그래도 어느새 국수 국물의 1/3이나 마셔 버린 것 같다. 아깝다. 어느새 1/3씩이나 마셔버리다니!,
너무나 아까운 나머지, 농부아저씨가 오른손에 젓가락을 잡은 채, 국수 그릇을 급히 들여다본다. 와, 다행이다. 아직 1/3까진 안 먹은 것 같다. 아마도 3/4정도는 충분히 남은 것 같다. 다행이다. 이제부턴 천천히 먹어야 되겠다. 지금처럼 허겁지겁 정신없이 퍼먹다간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들이마셔 버리고 만다. 큰일 난다.
농부 아저씨가 왼손으로 국수 그릇을 소중하게 끌어안고, 이제부터는 오른손에 잡은 젓가락으로, 국수를 한두 가닥씩 세어가면서 식사를 한다. 이렇게 아까운 국수가닥이 자꾸만 줄어드는 것이 아까워 죽을 노릇이다. 입안에서 왜 빨리 빨리 들어오지 않느냐고 난리지만, 이럴 때 잘 참아야 된다. 입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뱃속 깊은 곳에서까지 왜 음식이 빨리 빨리 들어오지 않느냐고 난리지만, 그래도 이럴 때 잘 참아야 된다. 이렇게 맛있는 국수를 한 입에 다 들이마셔 버리면 큰일 이다.
농부아저씨가 당겨오는 입맛을 억제하느라 진땀을 빼며 국수를 먹는다. 당겨오는 미각을 참아내느라 진땀을 빼며 국수를 먹는다. 나머지 국수그릇이 줄어들어가는 것에 촉각을 세우며, 국수가닥을 한두 가닥씩 세어가면서 식사를 한다.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국수가닥을 한두 가닥씩 세어가면서 식사를 한다.
다시 서너 너덧 시간 기도를 했다. 또 이상이 보인다. 이번에도 또 흰 눈이 쌓인 산길이 보인다. 이번에는 벚나무 단지가 조성되어있는 뒷산 산길이다.
막 오르막길을 지나서 평지 쪽으로 올라서니, 여기도 역시 흰눈이 하얗게 덮여있다. 주변이 하얗다. 하얀 백설기를 깔아놓은 것처럼, 눈의 질감이 아주 따스하고 부드럽다. 쌓인 눈의 높이가 발목에 푹푹 잠길 정도로 많기는 하지만, 햇볕이 워낙 따스하게 비취다보니, 눈의 질감이 아주 보들보들하게 보드라워 져있다. 아직 눈이 녹을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질감이 아주 따스하고 보드라워 졌다. 마치 하얀 비단이불을 깔아놓은 것 같다. 눈 위를 걸을 적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며 살짝 살짝 자욱이 나는 것이, 질감이 아주 그만이다. 이렇게 며칠만 따스하게 햇볕이 비춰준다면, 쌓인 눈이 곧 녹을 것만 같다.
또 한 십분 정도 기도를 했다. 또 이상이 보인다. 또 흰눈이 하얗게 덮인 들판이 보인다.
그리고 또 한 십분 정도 기로를 했다. 또 흰눈이 하얗게 쌓인 들판이 보인다. 그리고 또 한 십분 쯤 기도를 했다. 또 흰눈이 하얗게 쌓인 들판, 그리고 또 십분 쯤 후에 또 하얗게 눈 덮인 들판, 그리고 또 흰눈이 하얗게 쌓인 들판,.......,
와,
“예수님,
왜 이렇게 자꾸만 흰눈이 쌓인 들판만 계속 보여주십니까, 흰눈이 쌓여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똑같은 장면을 몇 차례씩 계속해서 보여주십니까?”
“그렇다면 정말입니까, 흰눈이 쌓여있을 때, 남북한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이!,”
“정말로 흰눈이 하얗게 쌓여있을 때, 남북한 전쟁이 일어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