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
2009. 11. 29일
<오후 4시에 받은 계시>
“옳지!, 이쪽은 됐고,”
“가만있어봐, 그 담엔, 이~쪽, 이쪽에 있는 이~ 것, 이것을 자르면 되겠다.”
손에 힘을 조금 넣어서 칼을 살짝! 내리찍자, 싹둑! 하고 잘라진다.
됐다. 그만하면 잘 잘라졌다. 됐다. 그만하면 됐다. 이제 이만하면 더 자르지 않아도 되겠다.
복숭아나무 가지치기를 했다.
날씨가 꾀 춥다. 이제 겨울이 곧 오나보다. 이제부턴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나보다. 햇빛이 따끈따끈하게 내려 쪼이고 있기는 해도, 그래도 기온은 좀 차다. 아무리 햇빛이 내려 비친다고 해도 겨울은 겨울이다. 이제부턴 아무래도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나보다. 이렇게 날씨가 산득산득하긴 하지만, 아직은 그렇게 본격적으로 추운 겨울은 아니니까, 우선 가지치기정도는 미리 해 두는 것이 좋겠다.
손에 잡고 있는 생선 칼이 꾀 무겁다. 생선장수 아저씨들이 사용하는 칼이라서, 칼이 꾀 뭉턱 하면서도 우직하게 생겼다. 꾀 무겁다. 생선 칼이 워낙 무겁다 보니, 그냥 한번 살짝 내리찍기만 해도, 잔가지들이 싹둑! 싹둑! 잘라진다.
묵직한 생선 칼로 대충 가지치기를 한다. 우선 북쪽 편에 있는 것을 골라서 하나 싹둑! 자르고 나서, 사방을 잘 살펴본 다음, 이번에는 깊숙이 나무의 한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가지를 향해서, 묵직한 생선 칼을 살짝 내려찍는다. 싹둑!, 가지가 가볍게 잘 잘려 나간다.
됐다. 이만하면,
이만하면 잘 잘라졌다. 오늘 가지치기는 이만하면 됐다.
그런데,
그런데 잠깐만!,
잠깐만!, 내가 지금, 내가,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건가, 내가,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건가, 내가 지금 제 정신인가?
내가 지금, 내가, 아니, 내가 지금 제정신인가, 내가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건가, 이 추운날씨에, 이 추운 겨울의 문턱에 가지치기를 하다니!, 와, 정말, 내가정말, 내가정말 제정신인가,
이 겨울에, 이제 조금만 있으면 본격적으로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곧 눈앞에 닥쳐올 텐데, 이 겨울의 문턱에 가지치기를 하다니!, 아니,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 기로, 이 추운 날씨에 가지치기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가지치기라는 것이 이른 봄에 하는 것이지, 이 겨울의 문턱에 가지치기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아니,
나무를 통째로 얼어죽일 작정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야 이 추운 겨울에 가지치기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된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된다.
그런데다,
또
가지치기를 해도 그렇지, 웬 생선 잡는 칼을 가지고!, 웬 생선 잡는 칼을 가지고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생선 잡는 칼을 가지고 나무를 잡다니!, 생선 잡는 칼을 가지고 나무를 잡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아니, 창고에 있는 공구가방에, 가지치기를 하는 벤치가 두개씩이나 있는데, 반짝반짝하는 외제 벤치가 두개씩이나 있는데, 그래 무엇 할 것이 없어서 하필이면 생선 잡는 칼을 가지고 가지치기를 한단 말인가?
그리고
또 가지치기를 한다면서, 왜 딱 두 가지만 자르고 마는가, 아니, 왜 그 다음 나무들은 자르지 않고 그만두는가?
무슨 뜻일까?
두 가지를 자른 것은, 미· 북한, 미· 중국, 이 두 전쟁을 말한다. 그리고
그 때가,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바로 지금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