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치
2009. 7. 28일
<p. m. 3시에 받은 계시>
가장 싱싱한 것으로 골라잡는다.
다라를 한번 휘 저어보니,
“이거다.
이게 가장 싱싱하게 생겼다. 이건 맛이 아직 그대로 살아있다. 무우가 생글생글한 것이 색깔이 살아있다.”
배추김치,
무우김치, 갓김치 등 5~6포기가 섞여있는 김치다라에서, 무우김치를 골라서 움켜잡는다.
두 손으로 잘 움켜잡으려는데, 무우에 워낙 고춧가루 양념이 더덕더덕 많이 묻어있어서, 미큰덩 미큰덩 하고 잘 움켜잡히지를 않는다.
두 손에
힘을 약간 주고는 조심스럽게 무우김치를 움켜잡는다. 조금은 미끌미끌 하긴 하지만, 워낙 조심을 하고 있기 때문에 손에서 빠지지는 않는다.
두 손으로
꼭 움켜잡고 머리위로 높이 치켜든다. 다른 배추김치 잎이 딸려오는 것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다. 무우 김치를 잔뜩 움켜잡은 손에, 다른 배추김치 몇 잎이 딸려오다가 스스로 떨어져 내린다.
됐다.
성공이다. 무우 김치 하나만 따로 잘 끄집어내는데 성공했다. 머리위로 높이 치켜들었던 무우를, 곁에 따로 준비해둔 쟁반위에 잘 옮겨 담는다.
와,
무우가 굉장히 크다. 뭐 웬만한 어린아기의 머리통만이나 하게 생겼다. 길이도 그만하면 거의 두어 뼘이나 될 것 같다. 어마어마하게 큰 무우다.
이렇게
큰 무우를 썰지도 않고 그냥 통 무우 째, 양념을 해서 김치를 담갔었다.
쟁반위에
올려진 무우김치를 보니,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싱싱한 것 같다. 나머지 다라에 남아있는 배추김치들도 뭐 맛이 많이 간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갔다. 상했다.
곰팡이가
끈적끈적하게 끼진 않았다고 해도, 그래도 무언가 좀 끈적이는 기가 있다. 또 색깔도 싱싱하질 못하다. 그리고 물기도 많이 말라붙었다. 한물간 김치다.
이런 김치를
그냥 반찬으로 먹기에는 좀 그렇다. 아무리 새로 담근 김치라고 하지만, 요즘 같은 날씨에 그냥 서늘한 창고에 며칠씩이나 보관을 해 두었으니, 맛이 간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버릴 정도는 아니다. 버리다니, 말도 안 된다. 이정도면 그냥 밥반찬으로 먹기에는 좀 그렇지만, 찌개를 끓여먹기에는 아주 좋은 김치다.
그중에서
가장 물이 좋은 것으로 골라놓은 무우는 아직 싱싱한 기가 살아있다. 무우는 그냥 먹어도 되겠다. 김치찌개를 만들 필요 없이, 썰어서 그냥 먹어도 되겠다. 아직도 싱싱한 기가 살아있다.
시뻘건 고춧가루 양념이 더덕더덕 묻어있는 무우김치가,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데도 저절로 군침이 돈다. 와, 이만한 김치 한 가지만 있으면, 밥 한 그릇쯤은 눈 깜작할 사이에 뚝딱 해 치우겠다.
그런데,
“히야,
넌, 넌 무우김치가, 넌 무우김치가 왜 그렇게 생겼니?
넌 무우김치가 아니니,
시뻘건 고춧가루양념이 사방에 더덕더덕 묻어있는, 잘 익은 무우김치가 아니니,
그런데,
야, 넌, 넌 무우김치면서, 왜 당장 붕~ 날아가 버릴, 포탄 같은 모양을 하고 그러니?
야, 넌 포탄이 아니야, 무우야, 그냥 무우야, 그냥 무우 김치라니까, 네가 그러고 있으면 남들이 보기에 포탄인줄 알잖니,
야,
너는 왜 자꾸만 대가리를 반짝거리면서, 당장 포르릉 날아가 버릴, 포탄처럼 그러고 있니,”
좀 시간이 지났다.
또 수돗가다. 조금 전에 무우김치를 꺼내던 바로 그 수돗가가 또 나타난다.
이번에는 배추김치 5~6포기가 담겨있는 김치 다라가 나타난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김치다라다.
전혀 다른 다라에 전혀 다른 김치가 담겨있다. 배추김치 5~6포기가 담겨있는 다라가 나타나는데,
윽!,
맛이 갔다. 맛이 너무 많이 갔다. 5~6포기나 되는 배추김치 중에 싱싱한 것이 하나도 없다.
아무리 서늘한 창고에 잘 보관해 두었던 것이라고 해도, 워낙 날씨가 덥다보니 그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착 쉬어버린 것 같다. 김치의 색깔이 누렇게 탈색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무언가 끈적끈적하고 미클 미클 하는 것이, 아마도 곰팡이가 잔뜩 낀 것 같다. 곰팡이인지 썩은 김칫국물인지 잘 모르겠다.
쯧 쯧,
도저히 그냥은 못 먹겠다. 마치 떡잎처럼 배추김치의 색깔이 누렇게 탈색이 된 것이,닉닉한 냄새가 비위를 있는 대로 상하게 한다. 썩은 냄새는 아니라고 해도 왠지 속이 니글거린다.
그나따나
그 중에서 가장 물이 좋은 것 하나를 골랐다.
한번 휘 저어보니, 한 가운데 있는 것이 가장 낳은 것 같다.
한 포기를
두 손으로 잘 움켜잡고 번쩍 들어서 쟁반위에 따로 놓았다. 시뻘건 고춧가루 국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시뻘건 양념이 더덕더덕 묻어있는 배추에서 국물이 흘러내린다.
그런데
김치 국물이, 국물이 별로다.
좀 상했다니까,
천상 김치찌개나 끓여 먹는 수밖에 없다.
“이걸로
찌개를 끓여놓으면, 조금은 군내가 날까!?”
무슨 뜻일까?
무우김치와 배추김치 2가지를 따로따로 보여주신 것을 보면, 무언가 전쟁의 징조 2가지가 또 터진다는 뜻인 것 같다.
그리고
김치가 좀 오래된 것을 보면, 무언가 이미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좀 조용해진, 고리타분하고 푹 썩은 사건이, 또다시 재발 한다는 뜻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