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치
2009. 5. 27일
그릇을 닦는다. 수돗가에서 그릇을 닦는다.
일찌감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빈 그릇을 닦는다.
커다란
다라에다 물을 가득 담아놓고, 그 안에서 빈 그릇을 하나씩 씻기 시작한다. 행주를 가지고 그릇을 문지를 적마다, 미클 미클 퐁퐁 비눗방울이 많이 품어 나온다.
먼저
큼직한 김칫통부터 씻기 시작한다. 아주 큼직한 김칫통이다. 김치 냉장고에 들어있던 통이라서, 그 크기가 꾀 크다.
이렇게
큰 통에다 한통 가득히 김치를 담가놓으면, 한동안 김치걱정은 잊어먹고 마음껏 먹을 수가 있다. 아무생각 없이 수시로 조금씩 꺼내먹었는데, 어느덧 그동안 담가놓은 김치를 다 먹었다.
오늘로서 김칫통에 들어있던 그 많은 김치를 다 먹어치웠다.
오랫동안 김치가 담겨있던 통이라서, 미클 미클 한 것이 다른 밥그릇처럼 빨리 닦여지질 않는다.
김치냄새가 워낙 통에 배어있는데다, 미클 미클한 때가 잔뜩 스며있어서, 힘껏 문지르는 대도 잘 안 벗겨진다. 그러다보니 김칫통을 닦을 때만은,
좀
무리하기는 하지만, 퐁퐁을 아주 진하게 풀어서 닦는다. 행주가 아예 거품 벅벅이 될 정도로 퐁퐁을 진하게 타가지고 닦는다. 쇠 수세미질을 하고, 그리고도 또 면 행주에 비눗물을 듬뿍 묻혀서,
통의
입구를 쓱싹! 쓱싹! 힘껏 문질러댄다. 미클 미클한 비누거품이 한도 없이 퍼져 나온다. 비누거품이 어찌나 많이 솟아나는지 김칫통이 아예 퐁퐁 비눗방울 통이 되어버리고 만다.
무엇보다 통의 윗 뚜껑 여닫이 부분을 골고루 잘 닦아야 된다. 손끝에 힘을 잔뜩 주고, 거품 범벅이가 된 면 행주로 이쪽 끝에서 저쪽 구석구석 까지를, 쓱싹! 쓱싹!, 힘을 다해 닦는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차분하게, 천천히, 깨끗이 닦는다. 미클 미클 김칫국물이 울어 나오면서, 통의 사방이 반들반들 제 모습을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무슨 뜻일까?
이제 까지 먹던 김치는 끝이 났다.
이제 김치를 다 먹었으니까, 그릇을 씻어가지고 새 김치를 담가 넣어야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슨 배추를 사다가 김치를 담글지가 궁금하다. 왜냐하면 배추의 종류가 하도 여러 가지 이기 때문이다. 강원도 고산 지대에서 재배하는 고랭지 배추에다,
수입배추,
평지 재배배추, 비닐하우스 재배 배추 등, 배추의 종류가 워낙 여러 가지 이기 때문이다. 강원도 고랭지 배추를 사올 것인지, 아니면 비닐하우스 재배 배추를 사올 것인지, 아니면,
요즘 새로 나온 신품종 배추,
그러니까,
폭동이라는 배추라든가, 북한의 핵실험 배추라던가, 아니면 개성공단 배추, 미사일 배추, 또는 그 유명한 촛불집회배추, 서해 해전배추 등등,
요즘
하도 신품종 배추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무슨 배추를 사다 김치를 담글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중 한 가지 배추만 사다가 담글 것인지,
아니면
이것저것 전부 합쳐서 특수한 김치를 담글 것인지, 앞을 가늠해볼 길이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까지 담가놓은, 평범한 김치는 다 먹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부터는 환경이 확, 바뀐다는 점이다. 바뀐다. 확 바뀐다.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다. 예전 같은 그런 일상의 모습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전혀 새로운 재료로 만든 반찬으로 식사를 하게 된다.
이제까지
전혀 맛보지 못하던, 새로운 식단이 짜여지게 된다.
기대도 되지만,
왼지,
기대보다는,
기대보다는, 불안감이 온몸을 감싸오는 것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과연 어떤 식단이 오늘부터 새로이 짜여질 것인지, 보통으로 신경이 쓰여 지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