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자욱
2010. 4. 27일
<아침 7시에 받은 계시>
“?”
“피가 묻었잖아!?”
“어디서 묻은 거야, 왜 길바닥이 피 천지일까!”
신발 바닥에 피가 묻었다. 논둑길을 걷다보니 신발 밑창에 시뻘겋게 피가 묻어있다. 미클 미클, 미큰덩 미큰덩, 윽! 징그럽다. 왜 길바닥이 피 천지가 되어있을까!, 이대로 그냥 길을 걷다가는 바짓가랑이에 피가 다 묻고 말겠다.
우선 급한 대로 논둑 풀밭에다 대고 발을 쓱쓱 문질렀다. 논둑 풀밭이 아직은 풀이 많이 나질 않았기 때문에, 하얗게 말라죽은 묵은 풀 절반, 그리고 지금 막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 절반이 섞여있다. 아직은 파란 새싹보다 작년에 말라죽은 하얀 풀이 더 많다.
신발을 신은체로 그냥 풀밭에 대고 쓱쓱 몇 번 문지르고 나니, 대충 핏기가 닦여진 것 같다. 풀밭이 하얗게 말라죽은 묵은 풀 천지 이다보니, 바스락바스락 부스러지는 부스러기들이 신발 발등에까지 하얗게 묻어난다. 핏기는 대충 닦여졌지만 신발이 먼지투성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핏기가 닦여진 부분에 지금 막 새로 돋아나는 새싹의 물기가 묻어서 그런지, 아니면 붉은 핏자국이 검은 신발에 아직 남아있어서 그런지, 실발 바닥에 물기가 살짝 남아있다.
아무리 전쟁 통이라고 하지만, 이곳 시골 논둑길까지 온통 시체들로 가득 채워놓을 필요야 뭐 있을까,
서울, 인천, 경기가 불에 바짝 태워질 때, 이곳 청주에서 대전까지는 물에 잠기게 되는데, 그때 물에 수장된 시체들이 온 들판을 가득 채우는가, 그래서 논둑길에 가득 널려있는 시체들이 발에 밟히는가!?
무슨 뜻일까?
논둑길 풀밭이, 하얗게 말라죽은 풀 절반, 그리고 작년에 말라죽은 풀 절반이 섞여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전쟁의 때를, 암시해주는 뜻도 담겨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