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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종말론자들

흙탕물 계시

펑크를 내는 시한부 종말론 자들

 

흙탕물 계시

 

저수지

 

<2008. 3. 31일 받은 계시>

.

이 계시는

하나님!,”

왜 맞지도 않는 계시를 내려 보내십니까!, 왜 펑크가 나는 계시를 내려 보십니까!”, 라고 기도를 하자 보여주신 계시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시한부 종말론 자들 치고, 누가 하나님께서 맞지도 않는 거짓 계시를 내려 보내신다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세상이 다 변한데도, 이 말씀만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굳게 믿고, 그 많은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아가면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렇게 굳게 믿고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를 않고 펑크를 낸다면, 그 예언자가 얼마나 크게 당황하게 되겠는가!, 하나님께서 맞지도 않는 거짓 계시를 내려 보내신 다고야,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그 말씀을 굳게 믿고, 그 많은 박해를 받아가면서 예언을 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전한 말씀이 맞지를 않고 펑크를 내다니!,

하나님께서 펑크를 내시다니!,

그 답답함!,

그 당황함!,

그리고 그 허탈감!,

목숨을 건 그 예언이 빗나가다니!, 생애를 걸고 전한 복음이 빗나가다니!, 도대체가 하나님께서 그런 계시도 내려 보내실 수 있단 말인가!

,

그 답답함!,

그 당황함!,

그리고 그 허탈감!,

하여튼

텅 빈 가슴을 안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다.

하나님, 왜 맞지도 않는 흙탕물 같은 계시를 내려 보내십니까!”

이때다.

환상이 보인다.

작은 저수지 이다.

사방이 들판이고 넓은 들판 한 복판에 작은 저수지 하나가 있다. 저수지라야 겨우 백여 평 될까, 아니면 그보다 두 세배 정도 더 될까? 저수지라는 말보다는 웅덩이라고 보는 것이 낳을지 모른다.

하여튼

큰 저수지는 아니다. 그런데 이 저수지가 사방 밭으로 둘러싸였다. 바짝 마른 밭으로 둘러 싸여있다. 밭의 흙을 보니까, 아주 완전 모래땅이다. 저수지만 곁에 없다면, 이런 밭은 그대로 두면, 순식간에 황무지로 변해 버리고 말 땅이다. 이런 밭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농부가 꾀 힘이 들것 같다.

그나마

곁에 저수지가 하나 있어서 다행이다. 저수지의 물이 끓이지 않고 물을 흘리고 있어서, 밭고랑 사이사이로 흐를 수 있는데다, 밭의 모래밭 속으로도 흙과 흙 사이로 얼만가 목을 축여주고 있어서, 농작물이 자라는데 여간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물이 틀렸다.

좀 썩은 물이다. 맑지를 못하다. 흐리다. 약간 푸르스름한 것이 마치 휘발유처럼 기름기가 흐른다. 멀리보기엔 휘발유라기보다 오히려 모빌유라고 보인다. 완전 흙탕물이다. 사방 모래밭에서 항상 모래바람이 몰려와가지고, 웅덩이의 물을 흙탕물 천지로 만들어놓기 때문이다.

썩은 물인지 기름 물인지 영 맘에 안 든다. 꼭 흐릿한 모빌유를 저수지에 가득히 부어 놓은 것 같다. 아무리 보아도 답답하다. 생수가 아니다. 맑은 생수가 아니다. 맑은 강물과는 비교도 안 된다. 흐르는 시냇물과는 비교도 안 된다. 탁하고 탁한 흙탕물일 뿐이다.

그나따나

이 밭에 이 저수지가 하나 있는 것이 다행이다. 이 저수지라도 없다면, 이 밭은 당장 모래사장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곳은 동쪽으로나 서쪽으로나 어디를 보아도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뿐,

어디

물이라곤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는 곳이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모래사막이 끝없이 펼쳐져있을 뿐, 물이라곤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는 곳이다. 만약 이곳에 이 웅덩이 물이 없다면, 이 들판은 반드시 모래바람만 부는 사막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썩은 물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 근처의 밭들은 그래도 이 물로 지탱하며, 옥수수를 맺고, 감자가 자라고, 그리고 밀과 보리가 자라고 있다. 그리고 각종 채소들이 자라고, 모든 곡식들이 주렁주렁 열매를 맺으며, 충실하게 알곡들을 산출해 내고 있다.

이 물이 없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 물이 탁한 흙탕물로 보일지 몰라도, 이 물로 말미암아 주변의 모든 밭에서 충실한 열매를 맺고 있다. 참외며, 수박, 그리고 도마도, 포도, 또 고구마, 고추, 가지, 오이, , 수수, 등등, 끝없이 펼쳐진 사막 가득히, 이루 말할 수 없는 곡식 들이 충실한 열매들을 맺고 있다.

아무리

맑은 물이 라고 해도, 멀리서 흐르는 시냇물은 이 밭과는 상관이 없다. 멀리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 아무리 생명강물이 흘러간다고 해도, 이 밭과는 상관이 없다. 이 밭에는 이 썩은 물만 못하다.

이 물로

모든 곡식들이 충실하게 알곡을 산출해 내고, 모든 과목들이 주렁주렁 열매를 맺혀낸다. 보이지도 않게 멀리 지나가 버리는 생명수 물과는 비교도 안 된다. 뭐니 뭐니 해도, 이 밭에서는 이 탁한 흙탕물이 생명의 물이다.

탁한 흙탕물이 아니라 맑은 물이다.

생수다.

세상 최고의 생수다.

그리고

세상 최고의 약수다.

세상 최고의 양식이다.

.

무슨 뜻일까?

.

하나님께서는 가끔 탁한 흙탕물로도 농사를 지으실 때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계시이다. 다시 말해서 맞지 않은 시한부종말론 자들의 예언으로도, 당대의 성도들을 양육하고 계신다는 뜻이다.

.

.

양계장

 

<2008. 3. 31일 날 받은 계시>

양계장의 크기가

글쎄,

어림잡아 넓이가 약 30평정도!,

높이가 대략 사람의 키로 두 키 정도로 꾀 높다. 재료는 통나무를 사용해서 직사각형으로 지어놓았다.

바로

물이 가득한 웅덩이 위에다 지어놓아서, 우선 시원한 물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아무 때나 목이 마를 땐 얼마든지 시원한 생수를 마실 수 있어서 좋다.

더욱이

순 통나무만 사용해서 집을 지어놓았기 때문에, 닭들에게는 시멘콘크리트보다 질감이 아주 그만이다. 아무래도 닭들에게는 콘크리트보다는 나무가 정감이 가기 때문이다. 아름들이 굵직굵직한 통나무들을 사용해서, 양계장을 아주 튼튼하게 잘 지어놓았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지붕이 없다. 지붕이 뻥 뚫려서 따듯한 태양을 직접 받을 수가 있게 되어있다.

19년 동안이나 창문 하나 없는,

빠삐용 감옥 같은 지하실에서 살아온 내가 보기에는, 하늘의 태양을 직접 받을 수 있게 지어진 양계장이, 얼마나 시원하고 위생적으로 보이는지 모른다.

태양이 따끈따끈하게 비취니, 저절로 모든 세균들이 살균이 된다.

그런데다

사방에 담벼락도 없다. 그저 통나무사이로 틈새가 듬성듬성 있어서 사방으로 바람이 시원하게 통한다. 바로 아래로는 흙탕물이기는 하지만, 풍부한 저수지의 물이 솟아오르고 있어서, 목이 마를 땐 언제든지 내려가서 물을 원대로 퍼 마실 수가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빠삐용 감옥 같은 지하실과는 비교도 안 된다.

그리고

직사각형으로 되어있는 사방에는, 이곳저곳에 통나무들이 나란히 얹혀 있어서, 닭들의 특성에 맞게 나무에 나란히 앉아있기 편하게 만들어져 있다. 이렇게 나란히 박혀있는 통나무위에 큼직큼직한 암탉, 수탉들이 나란히 앉아있다.

통나무들 위에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촘촘히 박혀 앉아있으면서, 당장이라도 알을 낳을 자세로 암탉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

무슨 뜻일까?

.

흙탕물을 먹고서도 닭들이 토실토실하게 잘 자란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 닭들은 바로 밑에 있는 웅덩이의 흙탕물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이 흙탕물이 없으면 이 많은 닭들이, 이 넓은 사막 한 복판 어디에서 물 한 모금 얻을 수가 있을 것인가!,

.

.

시한부 종말론 자들

.

이제까지

수많은 시한부 종말론 예언자들이 시한부 종말의 날을 예언했다. 그렇지만 그 수많은 예언자들의 예언이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다.

왜일까!?,

그 예언자들은 사탄에게 속아서 종말의 날을 예언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의 말대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그대로 전했는데도 예언이 맞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계시를 똑바로,

정말로 하나님의 계시를 정확히 받고 전했다면, 과연 그 계시가 빗나갈 수 있을까!, 정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가 맞지 않고 펑크를 낼 수가 있을까!,

우리는

생각도 해 볼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분명한데도, 그 계시가 펑크를 냈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실제로 시한부 종말론 예언자들과, 한두 번 전화 통화를 해 본적이 있다. 전화를 하기 전, 나의 감정이 어떠했겠는가!, 거짓 예언을 한 사람이니까, 얼마나 음흉하고, 가증한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일까!,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전화벨을 울렸다.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익크!,”

아니!,”

무엇보다 나는 그 보들보들하고 나긋나긋하면서도, 솜사탕처럼 고운 목소리에 놀랐다.

여보세요. 안녕 하십니까!” 하고 대화가 시작 되었는데, 정말이지 놀랐다. 내가 생각한 그 음흉하고 궤휼에 능한 그런 사람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궤휼에 능하다니!,

도리어 우리가 보는 보통 목사님들보다도, 두 배, 세배, 어쩌면 그보다도 더 곱고 따듯한 인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런 사람은 땅바닥에 1억짜리 돈이 떨어져 있다고 해도, 성큼 줍지를 못할 분들이었다.

성격이 어찌나 고왔는지, 대화를 하는 동안, 마치 예수님의 동생쯤 되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곱고, 부드럽고, 악이 없고, 욕심이 없고, 사심이 없고, 희생적이며, 헌식 적이고, 그러면서도 믿음이 있고, 정말이지 예수님의 동생쯤하고 대화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로 대화를 한 사람은

여자 예언자였는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나이가 30대 후반의 여자 분이었는데, 어찌나 마음이 곱고 천진스러웠는지, 마치 5살짜리 어린아이와 대화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린 아이처럼, 천진스럽고, 착하고, 곱고, 귀엽고, 예쁘고, 순하기만 한, 정말이지 믿음을 가진 분이었다. 그의 마음은 흰 눈 덮인 들판, 하얀 들판, 눈 덮인 산, 티끌 하나 없는 하얗고 하얀 들판 그대로 이었다.

이런 분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예언을 했다니!”,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좀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런던 올림픽 때의 일을 기억할 것이다. 북경 올림픽 전이니까 좀 오래된 이야기이다. 그때 마라톤 대회가 한창 열리고 있을 때였는데, 두 시간 반의 코스를 다 돌고, 선두를 달리고 있던 선수가 마침내 골인지점에서 흰 테이프를 막 끊기 직전이었다.

2등으로 들어오고 있는 선수는, 저 멀리 뒤따라오고 있었고, 선두로 들어온 선수가 막 흰 테이프를 끊기 직전의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바로 몇 초를 남겨놓고 어떤 남자가 갑자기 도로로 푸다닥 뛰어들어서, 선두로 진입한 선수를 와락! 끌어안아 버리고 말았다. 순간 적이었다. 어디선가 이상한 남자가 불쑥 라인 안으로 뛰어들어서, 선두로 들어오는 선수를 와락 끓어 안아 버리고 말았다.

주변은 난리가 났고, 대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이 미친놈을 잡이라고 아우성을 치고, 사람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범인을 향해 욕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부리나케 달려들어서 급히 그 사람을 체포해 버렸고,

여기저기에서 카메라 라이트가 터지고, 그 선수를 끌어안은 사람에게 매스컴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카메라를 들이대며 질문들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1등으로 들어오는 선수를 끓어않았습니까!”,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저는 시한부 종말론을 전하는 예언자입니다. 앞으로 며칠 후, 그러니까 몇 월 며칠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데, 사람들에게 아무리 이 일을 전해도 듣지를 않기 때문에,

지금

전 세계 매스컴이 집중된 자리에서,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좀 무리한 짓을 했습니다.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 대신 오늘 1등 하지 못한 분에게는, 그보다도 더 많은 축복으로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줄로 믿습니다. 정말로 그분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

정말이지!,

그 종말론 예언자가 얼마나 성령님의 감동으로 뜨겁게 닳아 올랐으면, 그런 무리한 일까지 저질렀겠는가!, 얼마나 성령의 감동으로 온 몸이 달아올랐으면, 그 어마어마한 일을 다 저질렀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까지 충성스럽게 복음을 전했는데도!

그 날짜에

예수님은

오시지를 않았다.

그는 정말로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했는데도!,

감옥에 들어가는 것도!,

사람들에게 매를 맞아 죽을 것도 각오하고 복음을 전했는데도, 예수님께서는 그 날짜에 오시지를 않은 것이다.

왜 그의 예언은 빗나갔을까!,

그가 하나님의 예언을 잘 못 받았기 때문일까!, 혹 사탄에게 속아서 거짓 예언을 했기 때문일까!,

만일 그 예언자가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면, 그의 예언은 왜 맞지를 않았을까!,

그 답변을

나는 성서에서 천천히 찾아보고자 한다.

.

.

* 예수님의 예언 *

.

1. 이 시대 [베드로의 시대]

.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24:34

이 말씀은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24:3 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다.

예수님의 답변을 요약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

그 날과 그 때에 대해서는,

일단

이 시대 [배드로의 시대]

라고

말씀해 주셨다.

절대로 모른다고 하시지 않았다. 분명히 이 시대, 즉 제자들의 시대라고 못 박아서 말씀해 주셨다. 특히 2,000년 후에 잃어날 일은 절대로 아니다.

.

그런데,

제자들의 시대에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셨는가,

물론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나 깊은 영적인 뜻을 함유하고 있어서, 모든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8:22

.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4:35

* 당시 밀은 2cm~3cm밖에 안 자랐음.

이런 말씀들은 절대로 문자적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섭리와 심오한 영적인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제자들의 질문의 내용은,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24:3

주의 임하심이라는

주님의 재림의 날짜를 포함하고 있다.

“Tell us, they said, when will this happen, and what be the sign of your coming and of the end of the age?” Mt 24:3

_ International Version _

.

"Tell us when all this will be, they asked, and what will happen to show that it is the time for your coming and the end of the age.” Mt24:3 _Today's English Version_

분명히 of your coming and of the end of the age, 또는 the time for your coming and the end of the age. ‘주님께서 오시는 날과 세상 끝이라고 못을 박아서 질문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답변 속에 아무리 심오한 영적인 뜻이 담겨있다고 할지라도,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이 시대,

즉 제자들의 시대에 주님께서 재림하신다고 믿을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

그렇지만

이 말씀대로

제자들의 시대에 주님의 재림은 이루어졌는가,

.

결론적으로 볼 때

예수님의 말씀도, 문자적으로, 시대적으로, 역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의 시한부종말론 자들의 예언이 펑크를 냈다고 해서, 무조건 이단으로 정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펑크를 낸 예언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와 뜻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

.

2. 여기에 서있는 사람들이 죽기 전에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 들도 있느니라." 16:28

볼 자들도

라는 말씀 속에는, 대개는 늙어죽고, 몇 사람만 본다는 뜻도 내포 되어있다. 지금 40~ 70세까지는 다 늙어죽고, 대략 20~ 30세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당시의 인간의 수명을 약 70세로 볼 때,

20대 사람들이 약 50~ 60세정도가 될, 앞으로 약 30~ 40사이에 일어날 일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 된다.

앞으로 약 30년 후에,

그리고

40년 안에

‘30~ 40년 사이에라고 정확하게 말씀해 주신 것이 된다.

그러므로

2,000년 후에 될 일은 절대로 아니다.

.

그런데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 들도 있느니라." 16:28 라는 말씀대로

여기 서있는 사람[제자들의 시대 사람들]중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본 사람들이 있는가?

.

.

3. 이스라엘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해서

.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10:28

이스라엘

동네를 다 다니기 전이므로, 내일이나 모래 잃어날 일은 절대 아니다. 더욱이 이스라엘 동네를 다 돌아다니는데, 2,000년이나 걸리지는 않는다.

이스라엘의 땅이 우리나의 경상남북도를 합친 정도의 크기라고 볼 때, 경상남북도에는 마을이 몇 개나 될까,

1개의 면에 약 10개의 마을, 1개의 군에 약 10개의 면, 1개의 군에 약 100개의 마을이 다고 가정할 때,

1개의 도에 약 10개의 군, 1개도에는 약 1,000개의 마을. 경상남북도를 합친다면 약 2,000개의 마을.

2.000개의 마을이라면, 12제자가 26개 팀으로 나누어서 2,000개 마을을 돌아다니는데,

대략

하루에 한 마을씩만 돌아다닌다고 해도, 360x6= 2,160 마을, 1년이면 다 돌아다니고도 남는다. 그중에 조금 큰 도시가 몇 개 있다고 해도, 늦어도 2~3년이면 다 돌고도 남는다.

그러므로

12제자가 둘씩 6개 팀으로 이스라엘을 돌아다니는데, 2,000년씩 걸리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2,000년 후에 될 일은 절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제자들이 이스라엘 동리를 돌아다니고 있을 때, 주님께서 오셔야 됨으로, 아무리 늦어도 최소한 40~50년 안에는 오셔야만 된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시기는, 제자들이 이스라엘을 돌아다니고 있을 무렵인 10여년 안에, 늦어도 제자들이 살아있을 동안인 50년 안에는 오셔야만 된다.

.

그런데,

실제로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10:28 라는 말씀대로,

제자들이 이스라엘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을 때,

다시 말해서

제자들이 살아있을 때, ‘인자가 오리라.’라는 말씀은 이루어졌는가,

.

.

4. 다 너희에게 [베드로의 시대] 돌아가리라.

.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23:35

분명히

다 너희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베드로의 시대 사람들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즉 하나님의 종말심판[예루살렘멸망]이 베드로의 시대의 사람들이 살아있을 동안에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100년 후 또는 2,000년 후 시대에 될 일은 절대 아니다.

.

그런데

정말로

제자들의 시대에, 하나님의 종말심판이 이루어 졌는가,

.

물론

A.D70년에 로마의 티투스에게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은 이루어졌지만, 제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이 말씀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만 받아들였겠는가, 이 세상의 종말심판으로 받아들였겠는가,

.

.

5. 인자가 하늘구름을 타고오는 것을 너희가보리라.

.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26:63~64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라는 말씀은, 대제사장이 살아있을 때 그의 눈으로 본다는 말씀이다.

대제사장은 30~50세까지이므로,

대 제사장이 늙어죽을 70세가 되기 전, 즉 앞으로 40~ 20년 안에, 주님께서 하늘구름을 타고 재림 하신다는 뜻이 된다.

오순절의 성령강림,

또는 앞으로 37년 후인, AD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의 멸망을 염두에 두고 하신 이 말씀은, 반드시 현재 살아있는 대 제사장과 그 주변에 있던 유대인들이 살아있을 동안인

앞으로 40~ 20년 안에는 반드시 예수님께서 하늘 구름을 타고 재림을 하신다고 말씀을 해 주신 것이 된다.

.

그런데

실제로

당시의 대제사장이

인자가 하늘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았는가,

.

결론적으로 볼 때,

예수님의 말씀도, 문자적으로, 시대적으로, 역사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시한부종말론 자들의 예언이 펑크를 냈다고 해서, 무조건 이단으로 정죄를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비록 펑크를 낸 예언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와

심오한 뜻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비록

펑크를 내는 예언이기는 하지만, 이 예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고자하시는 크신 섭리와, 작정이 담겨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

* 베드로 *

.

위의 모든 말씀들을 굳게 믿은 베드로는,

당시의 성도들에게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으니, 전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를 하자고 강력하게 설교를 했다.

그리고

그 설교에 깊은 감동을 받은 당시의 초대교회 성도들은, 실제로 집과 땅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를 했다.

그 후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렸지만, 그해 겨울이 다가오도록 예수님께서는 오시지를 않았다. 겨울은 다가오고 있는데 집과 땅이 없는 사람들은, 가족을 거느리고 그해 겨울을 어떻게 지날지, 보통으로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들이 늙어죽을 때까지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몇 년을 참다못한 성도들이, 베드로에게 질문하기를, 왜 예수님의 재림이 이렇게 늦어지고 있습니까, 라고 하자,

베드로의 어설픈 대답,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8

,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베드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그렇지 않은가!,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오늘도 어린 생명들은 태어나고, 내일도 어린 생명들은 태어나고, 모래도 그 다음날도 어린생명들은 계속 태어난다. 그 생명들을 하나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하신다면,

아직도 예수님께서 오시려면 1, 10, 100년을 더 기다려야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도 멸망치 않기를 바라신다면, 그 많은 생명들을 다 구원하시려면,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몃 십년이 아니라, 몇 몇 백 몇 천 년이 지나야 오실지도 모른다. 그런데 집과 땅은 왜 팔아서 구제하라고 했는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면, 그렇지 않은가!,

하루가 천년 같다면,

이제까지 몇 년을 기다려도 오시지 않은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몇 년 후, 즉 몇 천 년이 지나야 오실지도 모른다. 그런데 집과 땅은 왜 팔아서 구제를 하라고 했는가!,

정말이지

베드로는, 답변을 하면 답변을 할수록 더욱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게 되어버리고 만다.

이때 베드로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구차한 변명을 하며 당시의 성도들을 달래고 있었겠는가!,

.

왜일까!,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베드로의 시대에 다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시고는, 왜 그대로 이루시지를 않으셨을까!,

예수님께서는 왜 씨 뿌리는 비유처럼, 베드로에게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시지 않으셨을까,

주님께서 재림하시지를 않았으니, 그 당시 집과 땅을 다 팔아서 구제해버린 성도들은, 밤마다 교회에 가서, 철야, 금식, 울부짖는 기도를 하며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죽는 날까지도 하늘을 바라보며, 철저히 이 땅과는 구별된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이 세상 삶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

,

그 후 2.000년이 지난 오늘, 오늘에 와서 그들의 총 생애를 다시 한 번 저울에 올려놓고 달아보자.

그 당시 베드로의 예언을 믿지 않고, 집과 땅을 팔지 않은 사람들은, 일생동안 좋은 주택과 많은 전답을 가지고 부요한 생활을 하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세월은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이 다들 고인들이 되어 하늘에 올라가있다.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아브라함의 품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시 세상 적으로 살아온 사람들과, 매일매일 하늘만 바라보며 살던 성도들 중, 누가 하늘나라에서 더 많은 상급을 받아 누리며 살고 있을까,

지금

2,000년이 지난 지금

하늘에서

누가 하늘나라의 영광의 자리에 더 높이 올라가 있을까, 누가 하나님보좌 앞으로 가까이 낳아가 있을까,

이제

그들의 생애는 다 끝이 났다. 지금은 그들이 둘 다 하늘의 상급을 누리며 살고 있다.

그런데

누구일까, 하나남의 보좌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간 성도들이!?

일생동안 위를 바라보며 산 사람들일까, 아니면 부요하게 세상 적으로 산 사람들일까!,

말할 것도 없다.

당시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일생을 위만 바라보며 산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상급을 받아 누리며 살고 있을 것은 뻔 한일이다.

당시에는

베드로에게 속은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지금 그들은 오히려 당시에 베드로에게 속은 것을 감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당시에

베드로가 그렇게 강력하게 주님의 재림에 관한 설교하지 않았더라면, 자기들이 그렇게 까지 일생동안 하늘만 바라보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

그들은 절대로 손해를 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

오늘이라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지 모르니까, 전 재산을 다 팔아서 구제하자는 베드로의 강력한 설교에 대해서 감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

오늘날도 그렇다.

매 시대마다,

이 베드로가 있어야만 한다. 베드로처럼 당시의 신자들을 일깨워줄, 강력한 파워를 가진 시한부 종말론 예언자가 있어야 한다.

그 예언이

맞든 맞지 않던 상관이 없다. 매 시대마다 세례요한과 같은, 또는 베드로와 같은 강력한 시한부 종말론 자가 나타나서, 당시의 성도들을 일깨워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의 예언이 멎든 안 맞든 상관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종말론 예언자의 예언이 맞지 않으면, 무조건 이단으로 몰아붙이고 만다. 그렇지만 아니다. 정말로 시대마다 강력한 시한부 종말론 자가 있어야한다.

이 세상은 허영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는 허영의 도시일 뿐이기 때문이다.

.

그렇다고 해서,

온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오늘날의 그 많은 사악한 이단들까지, 무조건 다 옹호하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정말이지 이 시대에는 사악한 이단들이 너무나 많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악독한 이단들이 너무나 많다.

다 제거해야 한다. 다 잡아내야 한다. 샅샅이 살펴서 다 잡아내야 한다. 하나라도 이 땅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예리한 눈빛으로,

그들이 이단인지, 아닌지를 냉철하게 구별해내야 한다.

다만

이 사악한 이단들을 교회 밖으로 몰아낼 때, 그 중 베드로나 사도들 같은, 몇몇 충성된 종들까지 한꺼번에 싸잡아서 몰아내지는 말자는 말일 뿐이다.

.

결론 적으로

베드로의 예언도 맞지 않았다.

사도요한, 바울, 그 외의 모든 사도들의 예언도 맞지를 않았다. 다들 펑크가 났다. 그 시대에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진다고 그렇게 강력하게 외친 사도들의 예언이, 다시 말해서 시한부종말론 자들의 예언이, 모두 크게 펑크를 내고 말았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요엘, 미가, 요나,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치고, 당시에 그 예언이 이루어진 선지자가 누구인가!,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예언이 당장에 이루어질 것을 굳게 믿고, 하나님의 계시를 강력하게 전했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시한부 종말론 자들의 예언을 무턱대고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함부로 이단 취급해서도 안 된다.

무턱대고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뜻이 변치 않으심, 약속이 변치 않으심]” 6:18 만 외쳐서는 안 된다.

베드로, 요한, 바울이

이단은 아니지 않는가!, 오히려 베드로의 설교를 100% 받아들이고, 일생동안 위를 바라보며 산 사람들이 그의 생애를 성공한 사람들이 아닌가!

깨자!, 알자!, 이 세상은 존 번연이 천로역경에서 말 한 대로 허영의 도시이다. 다 불탄다. 다 탄다. 다 불타버릴 허영의 도시이다.

.

.

* 사도 바울 *

.

처녀 딸을 시집보내는 자도 잘 하거니와, 시집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 하는 것이니라.” 고전 7:37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13:11

사도바울은,

전 아시아를 돌아다니면서,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으니 처녀들은 시집가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권했다.

전 아시아뿐만 아니다.

심지어

구라파에까지 건너가서 처녀들은 시집가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권했다. 조금 기다렷다가 신부단장을 하고 예수님을 맞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말씀을 전했다. 이 말을 들은 초대교회 신자들은 시집을 가지 않고 독신으로 생을 마친 사람들이 많다.

그중

대표자가 바로 빌립의 딸 넷이다. 그들은 시집도가지 않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렸다. 그렇지만 그 처녀들이 늙어죽을 때까지, 그렇게 기다리던 예수님은 오시지를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바울은 크게 펑크를 내고 만 것이다.

적어도

30~40년 후에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면, 구라파와 아시아의 처녀들을 시집보내지 말라고 권했겠는가,

다시 말해서 바울은 헛 예언을 한 것이다. 크게 펑크를 낸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이 30~40년 후, 또는 2,000년 후라면, 누가 처녀 딸을 시집보내지 말라고 권했겠는가!

그렇다면

바울은 거짓 예언을 한 것인가!, 아니면 사탄에게 속아서 잘못 예언을 한 것인가!,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서 예언을 한 것이 아니고, 사탄에게 감동을 받아서 예언을 한 것인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으니, 시집보내지 않는 것이 더 잘 하는 것이라고 권했으니 말이다.

.

이 대목이

바로,

하나님께서는 흙탕물로도 농사를 지으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한 예이다. 당시의 성도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듣고, 시집도 장가도 가지 않으면서 오로지 일생을 하늘만 바라보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00년이 지난 오늘날 뒤돌아볼 때,

그들은 지금 하늘나라에서, 땅에서 신앙생활 한 것만큼 상급을 받아 누리고 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시집도 가지 않고, 땅을 팔고 집을 팔아서 가난한자들을 구제하며, 일생동안 금식, 철야, 고행의 길을 걸은 것만큼, 어마어마한 하늘의 상급을 받아 누리고 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

그렇다면

그 들이

지금 하늘나라에서 어마어마한 상급을 받아 누리면서, 당시의 바울에게 무슨 인사를 하고 있을까, 크게 펑크를 낸 그 예언에 대해서 원망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감사를 하고 있을까,

.

.

* 사도 요한 *

.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12:18

사도 요한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난 것을 보니 지금이 마지막 때라고

지금이 마지막 때인

증거까지 제시하면서, 지금이 마지막 때라고 강력하게 외쳐댔다.

.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1:7, 19:34, 2:36,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22:10

찌른 자가 보기위해서는, 찌른 자가 70세가 되어서 죽기 전인,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날부터 계산해서 최소한 40~ 50년 안에는 주님께서 오셔야만 된다.

그러나

그를 찌른 자들이 70세가 되어서 다 늙어죽도록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도 요한은 크게 펑크를 내는 예언을 하고 만 것이다. 당시의 성도들은 사도요한에게 속았거나, 아니면 이단한테 속아 넘어간 것이다.

왜 일까?

사도요한이 과연 이단일까!

!

이 대목이

바로

하나님께서는 흙탕물 계시를 통해서도 성도들을 양육하신다는 뜻이 된다. 왜냐하면 당시의 성도들은, 정말로 예수님이 곧 오실 줄 알고, 시집도 장가도 가지 않고, 집도 사지 않으면서, 오로지 신앙생활만 열심히 하다가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

.

* 아브라함 *

.

분명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시고, 아브라함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은 돌밭, 자갈밭, 사막, 황무지뿐이었다. 거기에다 기근이 들어서 종들이고, 양떼고 할 것 없이 전멸을 할 위기를 당하기도 했다.

그 뿐이 아니다.

밤이고 낮이고 원주민들의 습격이 보통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밤에는 원주민들이 횃불을 들고 쳐들어올 위험이 너무나 다분했다.

결국 아브라함은 일생동안 이 황무지에서 고생만 하다가 갔다. 고향 갈대아 우르와는 비교도 안 되는 땅에서, 생고생을 하며 생애를 마쳤다.

.

왜일까?

아브라함의 성화를 위해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갈대아 우르보다는, 사막이 더 낳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구절이

아브라함의 인격의 성화를 위해서는, 탁한 흙탕물도 가끔 사용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한 대목이 된다.

.

.

* 이스라엘 백성들 *

.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애굽에서 이끌어낸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막에서 일생을 마쳤다. 그들이 과연 사막에서 죽을 줄 알았다면 그 땅에서 출애굽을 했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그들이 원망하며 불평할 것을 사전에 알지 못했었겠는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원망과 불평을 할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그들을 광야로 끌어내신 이유는, 그들에게 손해를 주기 위함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손해가 아니라, 반드시 그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하심이었다.

성도의 성화를 위해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보다는, 사막이 더 낳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광야생활 40년을 지나면서 인격의 성화를 이루어서, 하늘의 상급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쌓아가지고 올라갔기 때문이다.

당시에 광야에 쓰러진 60만 성도들이, 지금 하늘나라에서 어마어마한 상급을 받아 누리면서, 당시에 광야 40년의 고행을 원망하고 있을까, 아니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을까,

.

이 대목이

하나님께서는,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탁한 물도 사용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대목이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주시는 대목이다.

.

.

* 이사야 *

.

주여 어느 때 까지니이까,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6:11~13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외쳐라.”

.

웃시야가 죽던해: B.C 739

예루살렘 멸망 : B.C 586 = 153년 후에 일어날 일,

분명히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외치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굳게 믿고, 이사야는 죽을 때까지 유다의 멸망을 외쳤다.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라고 하셨으니까, 그가 외치는 동안, 다시 말해서 그의 생애에 이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이 예언은 성취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사야는 크게 펑크를 내고 만 것이다.

만약 우리같이 순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예언을 믿고,

이사야의 예언하던 그 첫해(B.C739)

당장

집과 전토를 정리하고 요단강 건너편 모압, 압몬, 에돔으로 피난을 갔다면, 그들은 죽을 때까지 수 십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원망을 이사야에게 퍼 부으면 생을 살았겠는가!

.

거짓으로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찐저,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그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로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그 도모를 속히 임하게 하여, 우리로 알게 할 것이라 하는 도다.” 5:18

이사야의 예언은,

당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그 일들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로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그 도모를 속히 임하게 하여 우리로 알게 할 것이라 하는 도다.” 라고 이사야에게 야유를 퍼부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사야의 예언이 당시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이사야가 거짓 선지자 인가, 이단인가!, 분명히 이사야는 그 일이 당대에 이루어질 줄을 믿고 예언을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언제까지 외칠까요.” 라고 질문했을 때,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외쳐라.” 라고 명령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사야는 일생동안 헛 예언을 했던 것이다. 일생동안 펑크를 내기만하고 생을 마친 것이다.

이사야의 말을 듣고,

집을 살 사람들은 집을 사지 않고 도리어 집을 팔고, 재산을 정리한 후에, 모든 준비를 했던 사람들은 쫄딱 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사야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을 쫄딱 망하게 만들어 놓은, 거짓 선지자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죽을 때 까지도 이루어지지 않는 예언을 외쳤다면, 그 펑크를 내던 예언 때문에 이사야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겠는가?

또 그가 153년이나 살기는 했는가?

죽을 때까지 그는 펑크만 내는 미친 선지자, 거짓 선지자로 낙인을 찍히며 산 것이 아닌가,

당시 이사야의 예언을 굳게 믿는 순진한 성도들은,

시집, 장가도 못가고,

공부도 못하고,

집도. 재산도 다 팔아서 구제하고,

땅도 사지 않고,

사업도 다 정리하고,

아기도 낳지 않고,

신앙생활만 전심전력을 기울이며 생을 보냈을 것이다.

이렇게 믿음 지킨 사람들은, 몽땅 다 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사야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시에 그렇게 일생을 하늘만 바라보며 살다가 하늘에 올라간 성도들이, 지금은 이사야에게 어떤 인사를 하고 있을까, 당시에 크게 펑크를 낸 이사야를 원망하고 있을까, 이사야 때문에 오늘의 이 많은 영광의 상급을 누리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을까,

이 대목이

바로 흙탕물 계시로도,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성도들을 양육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대목이다.

.

.

* 예레미야(B.C.627~ 586) *

.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그 후에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그 대적의 손과, 그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21:7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25:11

.

그들이 여호와를 인정치 아니하며 말하기를, 여호와는 계신 것이 아닌즉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요, 우리가 칼과 기근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 선지자들은 바람이이라. 말씀이 그들의 속에 있지 아니한즉, 그같이 그들이 당하리라 하느니라.” 5:12

.

그들이 내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뇨. 이제 임하게 할지어다. 하나이다.” 17:15

.

예레미야는

요시야 13(B.C. 627)~ 예루살렘 함락(586)년까지 약 41년 동안이나, 예루살렘의 멸망을 외쳤다.

만약

예레미야가 예언을 하던 첫해에, 땅과 집을 팔고 모압, 압몬, 에돔, 또은 산골짜기로 피난을 떠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41년 동안이나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며 생을 보냈겠는가,

이 사람들이

일생동안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며, 예레미야에게 비난을 퍼 부었었겠는가!

그들이 내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어디 있느뇨. 이제 임하게 할지어다. 하나이다.” 17:15

.

.

* 에스겔(B.C. 593~570) *

.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응험이 없다 하는 너희의 속담이 어찜이뇨”. 12:22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말이 그의 보는 묵시는 여러 날 후의 일이라. 그가 먼 때에 대하여 예언하는 도다 하나니,” 12:26

에스겔의 예언은, 당시에 도무지 속히 이루어지는 것이 없었다. 이 말씀은 참다못한 당시의 사람들이, 에스겔에게 퍼부은 야유이다.

.

.

* 미가 *

 

B.C.728~697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 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 3:12

* - B. C. 728~697년의 히스기야 시대 중 대략 700년경의 예언. - *

시온이 밭같이 갊을 당한다고 예언했지만, 예루살렘은 돌 하나도 옮기워지지 않았다. 성 모퉁이 하나도 무너지지 않았다. 미가는 일생동안 헛 예언을 한 것이다. 허궁을 치는 예언을 한 것이다.

오늘날 이런 선지자가 있다면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우하겠는가, 반드시 그는 이단으로 낙인이 굳게 찍히고 말 것이다. 아마 어떤 사람을 돌로 쳐 죽이려고 달려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

.

* 요나 *

 

.

B.C. 760년경에 기록.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3:4

.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 이니이다.”

.

요나는,

하도 여러 차례 펑크를 내는 계시를 전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혀 믿지를 않고, 앞으로는 하나님의 계시를 절대로 전하기 않기로 굳게 결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

그렇다.

시한부 종말론을 외치는 선지자들은, 정말로 외로운 길을 걸었다. 분명히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온 계시를 전했지만, 그 예언은 번번이 빗나가고 말았다.

왜일까!

당시의 성도들을 일깨워서 양육하기 위해서는, 그 예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예언이 맞든 맞지 않았든, 그 예언대로 산 사람들은 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예언자에게 속은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하늘에 올라가서 보면 과연 내가 그때 그 예언자에게 속아서, 믿음을 지킨 것이 얼마나 다행한일인가라고 미소를 짓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당시 그런 시한부 종말론 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당시의 성도들이 얼마나 나태하며, 게으른 신앙생활을 했겠는가!, 그리고 하늘에 올라가서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하겠는가!,

그렇다.

우리는 시한부 종말론 자들의 예언이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그의 예언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알아본 후, 그의 예언이 하나님의 참 예언이 맞다면, 우리는 그 예언을 믿고 따라야 한다.

그렇게 한 후,

하늘에 올라가서 보면, 과연 내가 그 시한부 종말의 예언을 믿고, 일생동안 믿음을 지키며 살아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 예언을 해준 예언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재림이, 앞으로 2,000년이 남았지만, 내일 오신다고 믿고 하루하루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자.” 라고 한다면, 그의 말을 듣고 집과 땅을 팔아서 구제하며 열심을 낸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우리는

연약한 육체를 가진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거짓 예언을 하시는 것이 아니다. 연약한 우리 육체에 맞추어서 우리를 양육하고 계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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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오늘날의 그 많은 사악한 이단들까지, 무조건 다 옹호하자는 말은 절대 아니다. 정말이지 이 시대에는 사악한 이단들이 너무나 많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악독한 이단들이 너무나 많다.

다 제거해야 한다. 다 잡아내야 한다. 샅샅이 살펴서 다 잡아내야 한다. 하나라도 이 땅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예리한 눈빛으로,

그들이 이단인지, 아닌지를 냉철하게 구별해내야 한다. 날카로운 칼날로 그들을 예리하게 추적해내야 한다. 낱낱이 살펴서 모조리 잡아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도

베드로, 요한, 바울, 이사야, 예레미야처럼,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도, 하나님의 크신 섭리와 예정 속에서 펑크를 내는 예언자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

오늘날도

아무 사심 없이,

베드로, 요한, 이사야, 예레미야처럼

물질이나 음란에 치우치지 않고,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가 있다면, 비록 그가 펑크를 내는 시한부 종말론자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무조건 이단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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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신앙고백(信仰告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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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tminster Confession 웨스트민스터 신조 신봉,

John Calvinist 존 칼빈주의 신봉

Dordrecht Confession of Faith 도르트레히트 신조 신봉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루이스 벌 코프 조직신학 신봉